태양을 그리기

2018-09-1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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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츠미 나오키. 골육종에 걸린 젊은 사내.
오른쪽 다리와 연결된 골반 부위 고관절 뼈에 검붉은 브로콜리가 핀 것 같은 종양이 자라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으면서 죽기 싫어서 밤마다 흐느끼는 이 사내에게는 사연이 있습니다.

도쿄의 어느 미대에 진학해서 자신만의 색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의 색 배합에 대해 교수와 동료들은 조롱하기도 했지만 그는 계속 자신의 색감을 추구하기로 합니다.
“그림을 좋아했어. 그림 그리는 것을….”


대학을 졸업하고, 콘크리트 건물이 치솟은 도쿄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향으로 내려가 캔버스에 대자연을 담기로 결심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림 그리는 삶,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무명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어느 날 산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한 아이와 아버지가 올라옵니다. 
아이는 낮에 세상 밖에 나올 수 없는 “색소 피부 건조증”을 앓고 있었고, 저녁이 되어야 마스크와 짙은 안경을 쓰고서 겨우 바깥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단풍에 물든 산을 그린 캔버스를 들여다 보면서 아이는 나오키에게 말합니다.

           “… 예쁘다.”
           소년은 더듬더듬한 말투로 소근거렸다.
           “예뻐? 이 그림이 말이야?”
           나오키는 손을 멈추고 소년에게 되물었다.
           “응 무척 예뻐.”
           소년은 꾸벅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쁜…가?”

           (중략)

           “왜 이렇게 색이 잔뜩 들어 있어?”
           소년은 그림을 가리킨다.
           “왜냐니…, 단풍이 들어서 그런 건데?”
           “그래서 그렇게 예쁘구나.”

           
치넨 미키토, 『상냥한 저승사자를 기르는 법』 (2013) 
           김성미 역 (북플라자, 2017), 158-159쪽


아이가 나오키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나오키에게 그림을 팔라고 청합니다.
그 이후로 정기적으로 만나서 그림을 팔았습니다.
특히 그 아이가 낮에는 볼 수 없는, 아이가 좋아하는 태양이 그려져 있던 그림들.
자신의 그림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나오키의 마음을 환하게 채우고, 그는 더욱더 열렬히 자신의 색감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사갔던 부자의 집에 강도들이 들어와 부자를 살해하고, 살인자들은 그림이 비싼 것이라고 생각하고 처분하려고 화상을 찾아옵니다. 마침 그 화상에게 와있던 나오키는 아이 아버지에게 팔았던 그림이 나오자 충격을 받습니다. 그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알 리가 없었고, 그들이 그림을 가치 없게 여기고 처분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나오키는 다시 붓을 들지 못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부정당하고, 이 남자는 자신감과 함께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혼의 색, 그러니까 이 남자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173쪽)

긴 세월 실의에 빠져 지내던 나오키는 부자가 살해당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지난 날을 허망하게 보내버린 것에 대해 탄식합니다.
“나는 지난 7년 동안 착각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 이번 일로 그 아이가 내 그림을 소중히 여겨줬다는 것을 알았어. 그야 기뻤지. 하지만 너무 늦었어.” (200쪽)


그러나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 있을 뿐.

그 아이에게 그려주었던 그림, 살해당할 때 물감이 뭉개져서 엉망이 된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그는 다시 그림을 그려보려 합니다.
아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갔던 그 많은 풍경화들이 보관되어 있던 창고를 확인하고는 놀라서 숨이 멎을 지경이 됩니다.

“우츠미는 예전에 자신의 혼을 빈틈없이 칠한 작품들을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198쪽)

자신의 색이 빛을 뿜었던 시절에 그린 그림들이 이제는 나오키를 되살려내려 합니다.

           “너는 그림에 혼을 칠했어. 음악, 문학, 사상, 조각…. 
            혼의 물방울을 담는 상자는 많지만 

            거기에 속을 채우는 자는 적다. 
            넌 혼의 조각을 남길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존재야.” 
            (202쪽)


예술 작품 속에 자신의 혼의 파동을 불어 넣는 일.
인간이 할 수 있는 기이한 약동.

           “네가 남길 혼의 파동은 그것을 본 사람들의
            혼에 전해지고 그 혼을 뒤흔들 거야. 
            그리고 그들은 그 혼의 파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겠지. 네가 남긴 혼의 파편은 언제까지고 
            계속 살아 있는 거다.” (203쪽)


내 혼의 파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그 혼을 흔들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계속해서 그 혼은 퍼져 나갑니다.
 

           “그 아이는 네 그림 속에서 태양을 봤어. 
           그림에 혼이 담기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203쪽)


이 말에 크게 오열하는 나오키는 이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깨닫습니다.
팔레트를 쥐자 잃어버렸던 자신의 색을 되찾습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찬란한 색감이 되돌아 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혼의 파동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내려고 애씁니다. 그것이 그림이든, 노래이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몇 줄의 글이 담긴 사진이든, 여기 이곳 브랜드 매거진에 싣는 컨텐츠이든 간에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내가 만든 작품 속에 떠올라 있는 태양을 보며 기뻐할 한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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