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에 용이 있어도

2018-08-0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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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3> 다쓰카와 쇼스케 책 표지


시마우치 할아버지.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
젊은 날 조직폭력배 대부로 살아온 시마우치 씨는 손을 씻은지 오래되었어요.
진찰하기 위해 등쪽을 보려다가 마주친 거대한 용 문신이 할아버지의 지난 날을 짐작하게 합니다.

82세의 나이에 췌장암 진단을 받습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6개월의 수명만 남아 있을 뿐.

할아버지는 수술한다는 것에 대해 주저합니다.
그에게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살아갈 노력을 해보셔도 좋은 것 아닌가요?”

아들 내외가 일찍 죽었기에 부모도 없이 혼자 남겨진 손자가 걱정된다면 여기서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되고 살아보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등 뒤에 용이 있든 없든, 췌장암의 치료 방법은 바뀌지 않습니다.”
나의 이 한 마디에 시마우치 씨는 웃음을 찾으면서 수술을 결심합니다.


Photo by Philipp Kämmerer on Unsplash


투명한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눈이라고 하기보다는 소년의 눈동자였다. 
적어도 여기 병원에서 인생의 무대를 끝내고 퇴장하려는 병자의 눈이 아니었다. 
그의 마른 손을 잡자 맞잡은 그 손에 다시 강한 힘이 들어갔다. 
- 나쓰카와 소스케, 「신의 카르테 3 시간의 풍경」 (2014), 백지은 역, (아르테, 2018), 352쪽


내 동료 의사인 지로가 혼신의 힘을 쏟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납니다.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지로도 뿌듯해하고, 나는 물론 모든 병원 사람들이 함께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면서 떼어낸 조직검사를 해보니 스테로이드로 약물치료가 가능한 췌장염이었습니다.
암이 아닌 환자를 암으로 몰아가서 수술했다는 결과론이 대두됩니다.

대형 의료 사고가 터진 셈입니다.
환자의 멀쩡한 췌장을 절제한 사고.


사건에 대해 설명하려고 병실로 찾아간 나에게 환자의 유일한 가족인 손자는 날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 때 시마우치 씨가 굵은 소리로 손자를 책망하여 입을 다물게 하지요.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합니다.


“등 뒤에 용이 있어도 치료는 바뀌지 않는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노인은 깊이가 있는 미소를 보냈다.
“솔직하게 요즘같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그렇게 풋내가 풀풀 나는 말을 진심으로 입에 담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노인은 또 두세 번 작게 어깨를 흔들며 웃고는 조심히 덧붙였다. “그거 좋은 대사였습니다. 선생님.”
“시마우치 씨……”
“잊어버렸습니까? 수술은 선생님이 마음대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잖아요. 나와 선생님과 ‘두 명이서’ 정한 거지.”
“그렇죠?”라고 물어보는 노인의 웃는 얼굴은 어느새 자주 보았던 호호 할아버지로 돌아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시마우치 씨는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위의 책, 462-463쪽)


사람은 이야기가 있는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관계, 인과 관계,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다른 것을 다 덮습니다.

판세를 뒤집는 말.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지요.
평소에도 진심을 담아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사가 된다는 것은 전문 의료 기술 습득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가슴이 뜨거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 대고 말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와 닿는 말이 필요합니다. 말 한 마디가 폭풍이 몰아치던 마음을 잔잔케 하고, 보이지 않던 길을 엽니다.


“등 뒤에 용이 있어도 치료는 바뀌지 않습니다.”
풋내가 풀풀 나는 소리를 진심으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듣는 이를 웃게 하고, 가슴이 뛰게 하는 사람.

일에 몰두해서 건조한 말을 끊임없이 뱉다 보면 다들 어지간히 지칩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지, 하고 싶거나 매혹되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말이 필요합니다.
말 한 마디가 폭풍이 몰아치던 마음을 잔잔케 하고, 보이지 않던 길을 엽니다.

누군가를 웃게 하고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이 내 입에 붙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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